사실 미술에 재능없음을 느낀 것은 고딩 때였다.
같은 반에 지금 용어로 치자면 금손이 한명 있었는데
쉬는 시간이면 종종 공책 등에 만화를 끄적이거나 낙서를 하곤 했다.
반전이라하면 사회성은 조금 결여되어 말을 걸면 어버버버 하는 친구였다.
그러나, 그림에 있어서 어떤 센스만은 존재하여 몇개의 선만으로 그럴듯한 형태를 만들어내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뭐랄까..
부족한 사회성으로 인하여 남아도는 시간을 채운 노력 + 약간의 재능으로 인한 결과인 듯 하다.
어쨌든 그 친구처럼 나도 좀 따라서 그려볼까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도형을 그리고 명암을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서
뭔가를 보고 그리는 것 까지는 그럴듯 하였으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지.
(오래된 짐을 뒤져보니 그림들이 남아있는데 것도 스캔해서 올려놔야겠다)
암튼, 미술 관련 수업을 12학점 이상 듣게 된 후 머리로나마 미술을 이해하게 된 지금의 나는 그 때와는 다른 모습일 거라 믿으며,
취미 생활로 그림이라는 것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취미에 필요한 없던 시간이 생긴 것은 아니나
그 동안 짬짬히 lol 로 채워져 있던 시간들을 뭔가 생산적인 것으로 대체하겠다고 맘 먹었다.
모든 취미의 본질은 시간과 돈인데
일단 시간은 별로 없으니 돈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게다가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수채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막상 시작했을 때에 내가 잘할 지 모르니, 처음 투자는 최소로 하기로 했고...
며칠 간의 웹질 끝에 발견한 것은 바로 요즘 핫한 고체 물감 + 워터브러쉬의 조합이다.
그 중 선택한 사쿠라 코이 고체 물감 30 색!
은 단 한번의 지름으로 왠만한 준비를 끝낼 수 있는 아이템이어서 맘에 들었다.
가격도 그리 나쁘지 않았고, 암튼 지름은 고민보다 빠르기에 어제 도착
사진을 찍어놨다.
이미 포장을 뜯어서 좀 더렵혀지긴 했는데 다음같은 구성이다.
고체 물감과 물붓, 그리고 간이 팔레트까지... 뚜껑은 무려 이젤로 쓸 수 있다.
뒷면에는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간이 손잡이가 달려있고..호오
사진에 같이 찍힌 좌측의 워터컬러는 딱 엽서 사이즈의 수채화 패드이다.
한번에 4절 도화지를 채우고 싶은 맘도 컸으나,
아직은 그 광활한 화면을 모두 채울 수 있는 실력이 될지 몰라 일단 엽서 크기로 시작했다.
(것보다도 저 수채화 전용 종이.. 좀 비싸다 4절지는 황당한 가격이더군 -.- )
무려 면이 들어있다.
어쩐지 학창 시절에 쓰던 도화지는 붓만 대면 겨울철 스웨터마냥 표면이 거칠거칠 일어나곤 했지.
면의 % 함유량에 따라 또 가격이 천차 만별이긴 하지만 암튼 그런게 들어있다.
자 암튼 칼자루를 쥐었으니 뭐라도 잘라봐야지
수십년만의 첫 연습을 나름 비싼 수채화 패드에 할 수 없으니 집에서 굴러다니는 싸구려 종이를 이용해봤다.
남들 다하는 것처럼 일단 꽃부터 시작.
뭐지? 마르고 나니 그럴듯 하다. 아직 어설픈데..
고딩 졸업 이후 긴 세월동안 내가 모르는 실력이 발전했나 보다.
암튼 자신감을 약간 얻어서 수채화 패드에 그려봤다.
다른 상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사쿠라 코이 고체 물감도 좀 단점이 있는데,
일단 굳어진 색깔로는 종이에 어떤 발색이 되는지 전혀 짐작이 안가고...
동봉된 팔레트가 벌써 변색이 시작됐다.
그리고 워터브러쉬의 한계를 벌써 느껴, 수채화 전용 붓을 사야겠다고 맘을 먹게 됐다.